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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 09 그리고 99 19, 09, 99학번이 말해주는 서강인 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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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2-23 08:59 조회22,803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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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 09 그리고 99”

19, 09, 99학번 동문들이 말해주는 서강대 대학생활

 

1기 학생기자 김서영(19 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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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인들은 모두, 서강대학교에서의 대학 생활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번별로 그 시기는 다를지라도, 같은 장소에서 4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며 20대 청춘의 한 가닥을 적셨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학번을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삼민광장에서 힐링하는 게 최고였어” 또는 “곤자가 플라자에서 한 끼 간단하게 때우기 좋았죠”, “나는 학교 안에 있는 경카, 아레떼를 진짜 자주 갔었지” 등 다양한 학번의 동문의 회고를 들으면, 어떤 학번은 공감의 고개의 끄덕임을, 어떤 학번은 처음 들어보는 낯선 지명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어쩌면 우리가 같은 서강대학교를 다닌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의 추억이 생소하고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19학번, 09학번 그리고 99학번의 대학 생활은 강산이 변하듯 크게 달라졌을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공감대가 존재할지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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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삼민광장이 있었던 자리에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좌 삼민광장, 우 곤자가플라자)

 

 

곤자가 플라자 자리에 삼민광장이 있던 시절, 개인용 노트북이 흔하지 않았던 99학번의 응답부터 싸이월드가 한창 열풍이었던 09학번의 응답, 그리고 전면 대면 수업을 경험한 가장 마지막 학번인 19학번의 응답까지. 99학번, 09학번, 19학번 서강 동문분들께서 다양한 추억을 공유해주셨습니다. 

 

#1 서강대 내부 또는 주변에 있는 가장 좋아했던 음식점은 어디였나요?

 

응답하라 19학번> 

:서강대 내의 음식점보다 학교 주변 상권의 음식점을 많이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수저가 (차돌 짬뽕집), 가츠벤또 (일식집), 수엠부 (커리집), 마포리 (퓨전 파스타/리조또), 청석골 (한식집)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 아텍 김채현)

 

:1학년 때 신촌 맛집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제일 좋아했던 데는 치폴레옹이었어요! 친구들이랑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 시간에 자주 갔는데, 가격이 엄청 싼데 맛있어서 다른 맛있는 데 찾기가 어렵다, 싶으면 치폴레옹을 갔던 거 같아요! (19 경제 백석영)

 

응답하라 09학번>

:당시에는 학교 안에 어떤 식당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네요. 주로 학생 식당이나 섹방에서 음식을 시켜 먹었던 것 같아요. 그 때 당시 C관에 라면이 진짜 맛있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그때는 밥을 그냥 무한 리필로 퍼갈 수 있었거든요. 라면 하나 시키고 무한리필 밥에다가 김치까지 같이 먹으면 온종일 든든했습니다. 특히 술 먹고 다음날에는 무조건 씨관 라면이었어요. 치즈라면이랑 떡라면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라면 아주머니 기분에 따라서 가끔 떡치즈라면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학교 근처 맛집은 주로 지금 없는 곳 위주로 말씀드리면 학교 후문에 당가네라는 제육볶음 맛집이 있었고, 정문에는 신나라 불닭이라는 치킨집이 있었어요. 더 아래로 가면 마샹스 쪽에 타코야라는 치킨집도 있었는데 거기도 진짜 맛있는 치킨집이었어요. 그 맞은편에 OMC 치킨도 가격도 괜찮고(한마리에 6천원인가 했던 거 같네요) 포장 위주로 많이 팔았었는데, 거기서 치킨을 사서 한강에 가서 친구들이랑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쓰고 보니 주변에 가볍게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치킨집이 많았던 것 같네요.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엠마오관 학식에서 화력 좋은 버너로 순식간에 끓여 주시던 라면을 잊을 수 없네요. RA관 라운지(알라지)에서 먹던 김밥전도 별미였죠. 학교 밖에서는 산까치, 이판사판고기판, 나그네파전 등 즐겨 갔지만, 지금은 많이들 사라졌더군요. (09 컴공 이동균)

 

:기억을 떠올리려니 아주 오래전 일이군요. 1999년에 제가 서강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D관(다산관), C관(학생회관) 그리고 엠마오관에 식당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엠마오관 식당은 특이하게도 밥, 국, 반찬별로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접시를 많이 집으면 가격이 꽤 올라가서 학생 신분으로는 만만치 않은 돈을 내야 했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1학년 때 선배들에게 밥을 사달라고 졸라서 가게 되면 엠마오관을 갔습니다. 저는 법학과였기 때문에 법학과 건물이었던 다산관 식당을 제일 자주 이용했습니다. 당시 1,700원에서 2,500원 정도면 한 끼를 먹을 수 있었고, 늦은 오후에는 1,200원만 내면 아주머니가 라면 하나를 끓여 주셔서 곧잘 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서강대학교 하면 빠질 수 없는 “도라지(도서관라운지)” 그리고 “X관 라운지”가 있었습니다. 간식도 사 먹고 필요한 학용품들도 사고,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도 가장 많이 이용했는데, 지금은 건물들이 많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다 보니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입생 때부터 술을 좋아해서 학교 근처 술집이 특히 기억이 많이 납니다. 1999년 3월 어느 날 입학한 지 얼마 안 돼서 금요일 밤에 “베스트”라는 술집에서 동기들, 선배들과 소주를 마셨는데 필름이 끊겼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방은 없고 몸만 동기 하숙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술집에 다시 가 봤지만, 문을 열지 않아 가방을 잃어버린 채 집에 돌아왔고, 어머니에게 혼 날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혼내시지 않더군요. 이미 어른으로 대접해 주시려고 했던 걸까요. 가방은 그다음 주 월요일에 또 다른 동기 하숙방에서 찾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주인을 잃어버린 가방들이 모두 그 친구 하숙방에 모여 있었던 기억이.... 여튼 그 뒤로 “베스트”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 자주 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종종 가서 소주 한 잔씩 했던 건 같습니다. 위치는... 지금도 있는 동해횟집 쪽 골목으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지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베스트”를 지나서 올라가면 “산까치”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그곳도 자주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 정문 건너편 얕은 경사로를 내려가면 “마당 호프”라는 맥주집이 있었는데, 거기는 주로 단체 모임 장소로 이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기 전체 모임이나 선후배 모임은 마당 호프에서 자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문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언덕을 넘어서 신촌역 6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보성각”이라는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2002년 가을학기에 복학한 후 자주 다녔는데 짜장면이 1,500원~2,000원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앞이라 유독 더 저렴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트메뉴를 먹어야 더 경제적이라고 동기들과 거의 세트메뉴를 먹었습니다.  

 

노고산 숯불갈비와 동해횟집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더군요. 두 군데 모두 학생 당시에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많이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취업한 후에 아직 공부 중이었던 친구들과 노고산 숯불갈비에서 크게 한 번 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학생 때 가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동해횟집은 갈빗집보다 더 부담스러운 곳이었죠. 회 한접시에 30,000~40,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소주까지 한잔하려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아서 거의 가 보지 못했죠. 사회에 나온 후 2015년쯤 한 번 가 봤는데 여전히 그때 그 사장님이 계셔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손님들이 주시는 소주를 받아 드시고 얼굴이 붉어져 계신 것도 옛날과 똑같았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학교 정문으로 나와서 오른쪽 거구장 건물 가기 전쯤 “홍원”이라는 중국집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 것 같더군요. 위에 언급한 보성각보다는 더 늦게 생겼고 조금 더 고급진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곳에 남아 있는 추억으로는, 2006년도 2학기(저에게는 마지막 8학기였습니다)에 “법학특강” 수업을 하셨던 김평우 교수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홍원(정확하지는 않지만 홍원이었던 듯)에 가서 연태고량주와 여러 고급 음식들을 사 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교수님이 술을 사 주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학생 신분으로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과 고량주를 많이 먹고 마셨습니다. 연태 고량주도 그 때 처음 마셔 봤는데 교수님 앞에서 여럿이 필름이 끊겼을 겁니다.

 

이름도, 간판도 없는 순댓국집도 있었는데 후문으로 나가서 오른쪽에 있던 얕은 언덕을 올라가면 거의 쓰러져 가는 건물에서 아주머니가 순댓국을 파셨습니다. 5,000원 안 되는 돈으로 든든한 순댓국을 먹을 수 있어서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후문 쪽이 특히 더 몰라보게 바뀌었더군요. 당연히 순댓국집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후문에 6호선 대흥역이 생겨서 오히려 신촌역보다도 대부분 대흥역에서 후문 쪽으로 학교를 다녔고, 그 주변에 돈가스집, 한식집을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그 일대 빌라들도 모두 철거되고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서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99 법학 김원용)

 

 

#2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요?

 

응답하라 19학번> 

:보통은 학교에서 동기들과 과제를 같이 하거나, 동기들과 선배들이랑 저녁 혹은 술 약속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소모임 활동도 거의 매주 했었던 것 같아요! (19 아텍 김채현)

 

응답하라 09학번>

:술을 많이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 라운지에서 밤을 새면서 공부를 했던 기억도 있구요. 그렇지만 주로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서강오케스트라 동아리에 올인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라,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들을 동아리 방에서 보내며 악기 연습, 시험공부, 점심 배달을 이어가다가, 해가 지면 근처 밥집/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과 반주를 즐겼죠. (99 컴공 이동균)

 

:대학 생활을 뒤돌아 보면 가장 아쉬운 점이 사법시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방과 후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것입니다. 알바나 동아리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네요. 그러면서도 술은 또 무지 많이 마셨습니다. 1999년 1학년 때는 고등학교 때 학원 영어 선생님 주선으로 영어 과외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 30만원을 받았으니 큰 돈이었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었고, 밤이 늦으면 항상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2006년부터 2007년 2월 졸업할 때까지는, D관 2층에 있던 독서실에 아침 10시쯤 동기와 나와서 책만 펴 놓고 후문 근처 PC방에 가서 밤 11시까지 게임을 하고 다시 독서실에 와서 책만 걷어가는 생활을 꽤 오래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녁 6시 쯤에는 PC방에서 잠깐 나와서 그 옆 건물 1층에 있던 투다리에서 소주 한 병에 찌개 한 그릇도 많이 했지요. 또, 공강 시간이나 낮에는 3관 도서관에서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99 법학 김원용)

 


#3 서강대 새내기 오리엔테이션(OR)이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응답하라 19학번> 

:사실 이제 거의 3년 전 일이라서 가물가물하지만 나름 그래도 동기들과 처음 제대로 만나고 친해진 계기여서 즐거웠던 것 같아요! OT가 조금 지루할 정도로 길긴 했지만 그래도 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 아텍 김채현)

 

:OR 때는 진짜 다양한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같은 섹션 동기 중에 친한 친구들이 몇 명밖에 없는데 그때는 처음 들어가서 다 같이 친해지는 분위기이다 보니 아직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했던 걸로 기억해요:) 여자애들만 있는 방에서 다 같이 셀카를 찍기도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그리고 지금은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하지만, 그때는 오알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에 뒷풀이 술자리가 있었는데 그때도 동기들, 선배들이랑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 좋았어요! (19 경제 백석영)

 

응답하라 09학번>

:저는 새내기 때 학부별로 OR을 갔었고 에버랜드로 갔었습니다. 1박 2일로 갔었는데, 둘째 날에는 인원들에게 자유이용권이었나 BIG5였나 무언가를 줘서 숙취가 심한 상태로 에버랜드에 갔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숙취가 심해서 동물원을 갔습니다.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새내기였을 때 OR은 술로 시작되어 술로 끝나는 무한술판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대동제 때 고사 지낸 돼지머리를 어느 과에서 차지해서 그 머릿고리를 안주 삼아 술을 먹었더라가 회자되었죠. 이후에 서강오케스트라 동아리 공연을 위해서 선발대 선배로서 참석했던 OR중에서는, 폭설로 고립되어 본대가 뒤늦게 합류하기까지 며칠 동안 설경을 벗 삼아 술로 위로했던 2001년 2월이 기억에 남네요. (99 컴공 이동균)

 

 

#4 축제에 대한 기억도 궁금합니다.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응답하라 19학번>

:저는 1학년 때 친구랑 같이 축제에 갔었는데 그때는 학교 운동장에서 편하게 축제를 볼 수 있게 빈백 대여가 가능했어요! 10cm 왔었는데 축제 분위기도 좋고 노래도 너무 좋고 진짜 힐링이었어요! 그리고 다 끝나면 사람 많을 거 같아서 끝나기 전에 친구랑 치킨 먹으러 나왔었는데 그것도 재밌었던 기억인 거 같아요. (19 경제 백석영)

 

응답하라 09학번>

:이래저래 일들이 많았었어요. 09년도 5월에 새내기로서 대동제를 준비하던 때에, 갑자기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면서 축제를 취소했던 적이 있었어요. 대신 10월에 단대별 주점 등을 하면서 나름 축제 분위기를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10년도에는 학교 50주년이어서 이런저런 큰 행사들을 많이 했었어요, 학교 잔디밭도 그때 오픈을 했었고, 축제 때에도 지금은 잊혀진 사람들이지만 레인보우, 티아라, UV 등이 와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레인보우는 제 생일에 왔어서 기억이 더 나네요. 지금은 교내 금주, 더 최근에는 코로나 등으로 인해서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그 때에는 캠퍼스 주점이 정말 재미있는 행사 중에 하나였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도 불러서 같이 놀고, 서비스도 그냥 몇 개 주고 미팅도 시켜주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운동장에 설치된 축제무대에 롤러코스터가 와서 공연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러머가 없는 밴드라서 그랬는지, 공연 시작 시간 전부터 첫 곡의 전주 부분 신디 드럼을 루프(무한반복) 걸어두고 각 멤버들이 한 명씩 입장해서 각자 사운드체크를 하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루프를 풀어버리고 첫 곡 Last Scene으로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장면이 소름 돋도록 매끄럽고 펑키했거든요. (99 컴공 이동균)

 

:사실 축제도 적극적으로 참석하지를 않았는데, 복학 후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니, 당시 축제에서 동기들과 술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서 찍은 사진이 있네요 ㅎㅎ 지금은 주점이 금지되어 있다니,,,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삼민광장 잔디밭에서 막걸리도 많이 마셨었는데요. 후배님 문자에 삼민광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는 언급이 있던데, 저는 오히려 간만에 가본 학교에서 곤자가 플라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제가 졸업할 때 즈음인 2006년부터는 이미 곤자가 플라자 초기 공사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추억이 있는 삼민광장이 사라진 점은 아쉽지만, 2015년에 곤자가 플라자에서 결혼을 하면서 저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학교에서 만들었습니다. ^^(99 법학 김원용)

 

 

#5 가장 기억에 남는 교양과목은 무엇인가요? 

 

응답하라 19학번>

:교양과목이라면… 서양미술의역사와감상 (이게 맞는 이름인지는 모르겠네요)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미술역사를 좋아해서 새내기 첫 학기 때 들었는데, 나름 재밌게 들었던 것 같아요! (19 아텍 김채현)

 

응답하라 09학번>

:교양 과목은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패러글라이딩 수업이 있었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패러글라이딩 놓고 이륙 연습하는 모습이 되게 이지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은 있습니다.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서강오케스트라 동아리 단원들의 전략 과목이었던 “음악사 및 음악감상”, 교양영어 파트의 “영화를 통한 영어 연습”, “다영상 매체와 영어 연습”, A폭격기로 유명했던 “소크라테스의 철학”, 계절학기의 인싸 과목 “영어 워크샵”, 교수님과 함께 까르푸에서 와인/바게트/치즈를 조달해와서 시음/시식회도 열었던 “프랑스 문화의 이해”, 중간/기말 발표 조모임 준비하여 여러 커플 눈맞았던 “에어로빅 및 포크댄스”, 용강동의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늘 출석 체크 했던 “필드골프” 등 여러 교양과목들을 수강했죠. (99 컴공 이동균)

 

:1999학년도에는 교양필수를 “중핵 과목”이라고도 했습니다. 큰 영역으로 “언어와 사고”, “사회와 문명의 이해”, “인간의 이해”, “과학의 이해”, “국제언어와 컴퓨터”의 5개가 있었는데 각 영역별로 최소 1과목씩은 수강했어야 했습니다. 

 

문과임에도 “과학의 이해”도 들어야 해서 골치 아팠었고, 그중에 “생명과 환경” 과목을 수강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기본적인 유기체로서의 생명의 특징을 이해하고 생명의 기원과 진화, 인간의 발생과 진화 및 뇌의 발달, 인간의 행동을 다룬다고 되어 있네요...^^;

 

그리고 국제 언어 영역에서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중 택1 하여 들어야 했었는데, 저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였던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거의 모든 동기가 독일어 수업을 택하여 프랑스어 수업은 저 혼자 들었던 것 같은데, 당시 인문대 건물이었던 X관은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이 많았고 기초프랑스어 수업에는 심지어 남학생이 저 빼고는 1명 정도밖에 없었어서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갈 때 났던 화장품 냄새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법학과 강의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학점짜리 교양필수과목으로 “PC와 인터넷”을 들어야 했습니다. 현대 정보화 사회에 필수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사용법, 사무자동화에 필요한 각종 응용 프로그램의 사용법과 인터넷 정보검색 및 페이지 작성법 등을 다루는 수업으로 강의 1시간과 실습 1시간으로 되어 있다는데, 21세기를 앞둔 세기말... 그 당시 신식 개념이었던 정보화 시대가 기억나네요. 개인용 컴퓨터도 흔하지는 않던 때였습니다.

 

제가 수강한 교양 선택 과목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독일테마여행”과 “독어사”네요. 독일에 특별히 관심이 있던 건 아닌데 (송완용) 교수님이 학점을 잘 주신다는 소문에... 동기들과 우르르 수업을 들었습니다. 독일테마여행은 다른 수업 같지 않게 부담도 없고 재미있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프랑스 문화의 이해”, “중국 문화의 이해”, “한자와 중국문화” 등 각종 문화 관련 과목을 수강한 것을 보면 유독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건지... 학점 때문에 들은 건지... 과목이 그냥 만만해 보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99 법학 김원용)

 

 

#6 대학생활을 하며 소소한 일탈의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응답하라 19학번>

:일탈이라면…출석이 안 들어가는 수업을 가지 않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통금의 경우 부모님을 설득하면서라도 어기고 늦게 들어가서 나름 바른생활 어린이로 살았던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19 아텍 김채현)

 

응답하라 09학번>

:동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수업을 하루 종일 안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왜 빠져야 하는지 몰랐었는데, 막상 공연을 준비하다 보니 하루를 꼬박 걸려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죠. 그렇지만 제 본분은 학업에 정진해야 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떳떳한 기억은 아닙니다. (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저는 8학기 동안 FA로 학사 경고를 맞아 본 적은 없고 비교적(?)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정문 바로 오른쪽 건물 지하에 “동아리“라는 당구장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특히 1학년 때는 가끔 수업에 안 들어가고 당구장에서 놀았던 기억은 있네요. (99 법학 김원용)

 

:끝내주는 날씨의 새내기 어느 날, 아랫동네(AS관) 수업이 끝나고 이어지는 윗동네(D관) 수업을 들으러 X관으로 부지런히 가던 도중, 지금은 사라진 삼민광장의 잔디밭에서 탕수육과 고량주를 펼쳐놓고 지나가는 후배들을 낚던 동아리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날 하루 자체휴강하며 낮술의 재미를 만끽했던 일탈도 했었죠. 물론 내리사랑에 충실하여, 제가 복학생 선배가 된 후에도 동아리 친구들과 비슷하게 술판을 벌여놓고 후배들을 낚아서 즐거운 일탈의 추억을 선물했네요.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을 알바트로스 탑 주위의 분수대에 입수시키던 위험한 추억들도 기억나네요. (99 컴공 이동균)

 

 

#7 서강대학교에서 경험한 웃긴 경험 또는 일화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응답하라 19학번>

:세가지 일화가 기억납니다. 공강 4시간이라서 1시간만 자야지…라고 했는데 일어나보니까 5시간 지나서 알바트로스 세미나 수업을 통째로 빼먹은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하철 타고 통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맨날 계산 실패해서 지각으로만 3결 2지각을 채우고 출석 비중 큰 크비 수업 결국에 b 받은 일, 그리고 마지막은, MT 갔는데 친구가 선배한테 동기인 줄 알고 반말했던 거… 그 둘은 결국 그 계기로 밥약을 했다고 합니다. (19 아텍 김채현)

 

응답하라 09학번>

:철학과 석기용 교수님 수업을 많이 들었었는데요, 나름 수업을 많이 듣기도 하고 교수님께서도 익살스러운 분이셔서, 제가 수업 도중에 하품을 한 적이 있어요, 교수님께서 그렇게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산소를 다 마셔버리면 주변 사람들이 숨을 어떻게 쉬냐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09 경제 김우근)

 

응답하라 99학번>

:웃긴 경험이라기보다는 슬픈 경험 같은데, 1학년 2학기 때 지도교수님이 전공 필수 과목이었던 “민법 총칙” 과목에서 “D학점”을 주셨습니다. 8학기 다니는 동안 유일하게 맞아 본 D학점인데요. 심지어 백지를 낸 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궁리하여 여러 페이지 답안지를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D학점을 주셨는지... 그렇게 엉뚱한 답을 적었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복학한 바로 그 학기에 재수강을 해서 영광의 B+로 make up을 했습니다. 재수강을 하면 A학점은 받을 수 없는 제도는 서강대학교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성적 증명서를 보니 저는 “민법 총칙”과 “가족법” 두 과목을 재수강해서 B+를 받았군요. (99 법학 김원용)

 

:군대 가기 전까지 가끔 꿈에 나와서 이불킥했던 웃기지만 아찔했던 경험은, 1학년 물리 과목이었던것 같은데, 교탁 바로 앞자리가 제 지정좌석이었거든요. 전날 술을 많이 먹었는지 꾸벅꾸벅 졸다가 교수님께서 불러서 눈을 떠보니, 교수님이 바뀌어 계시더군요.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고 강의실 중간 즈음에 3~4학년으로 보이는 분들이 모두 저를 주시하고 계셨고, 갑자기 교수님이 “자넨 누군가?” 물어오셔서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빛의 속도로 그 강의실을 탈출했던 악몽이었죠. (99 컴공 이동균)

 

   학번마다, 축제에 초청된 가수는 달라도 대학축제 날만큼은 공부도 잠시 쉬고 맘껏 즐겼다는 거, 학교 다니며 저렴하고 맛있는 밥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거, 수업이 끝나고는 동기와 선후배들과 술 한잔하며 하루의 회포를 찐하게 풀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월의 차이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의 대학 생활이 신기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며 느꼈던 그때 우리의 다채로웠던 감정은 모두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새로운 학번의 서강인들 또한 마포구 백범로 35길, 그 자리에서 다르지만, 또 같은 소중한 대학 생활의 추억을 마음껏 쌓아가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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