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책은 사람과 합의에서 완성된다”_이태희(86 경제) 법무법인 세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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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10-17 13:54 조회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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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사람과 합의에서 완성된다”
이태희(86 경제) 법무법인 세종 고문
이번 서강옛집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정보통신, 방송, 과학기술 정책의 최전선에서 길을 터온 이태희(86 경제) 동문을 만나 보았다. 대한민국의 기술 발전을 바로 옆에서 지켜 봐 온 이태희 동문의 오랜 정책 경험과 통찰은, ICT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서강 동문이 걸어온 길을 비추고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제시하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이태희 동문은1992년 행정고시(재경직) 합격 후, 통계청,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거쳐, 2022년 6월 과기정통부 기획조정실장직을 퇴임하고 현재는 ICT산업의 전문가로서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태희 동문이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영역에서의 서강 동문의 영향력과 잠재성, 그리고 비전을 조명하고자 한다.
▲ 이태희 現 법무법인 세종 고문
Q1. 선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경제학과 86학번 이태희입니다. 저는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한 후,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발령지는 통계청이었고, 이후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거쳤습니다. 2022년 6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조정실장직을 마지막으로 퇴직하였고, 현재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경제학을 전공하셨는데, 정보통신·과학기술 정책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는 얘기가 있죠. 사실 제 진로는 완전히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취업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군 가산점 제도로 인해 공공기관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배의 조언을 받아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1992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통계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후 자연스럽게 정보통신부로 전보됐고, 그때부터 무언가에 이끌리듯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통계청에서 일하던 중에도 IT와 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우연히 정보통신부에서 제공한 기회 덕분에 그 분야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 후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이죠.
Q3. 학창 시절 서강에서 지금도 남아 있는 기억이 있을까요?
A. 서강에서의 가장 큰 기억은 고(故) 박 홍 신부님과의 인연입니다. 1992년 행정고시 합격 후, 제가 고시반을 도와주던 중 박 홍 총장님께서 저와 함께 합격한 박재민(86 정외) 학우를 총장실로 부르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박 신부님께서 3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주시며 고시반 운영에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서강 출신 공무원이 없어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말씀이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박 신부님은 우리가 서강의 일원이자, 서강을 대표하는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 지원금으로 고시반 특강을 진행했고, 이후로 매년 2~3명의 합격자가 나왔습니다.
Q4. 30여 년간의 정책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요?
A. 제가 정책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민영화입니다. 당시 저는 2000년부터 이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고, 민영화 과정에서 다양한 복잡한 절차들을 진행했습니다. 국내 공모, 해외 상장, 전략적 투자자 지분 매각, 최종 국내 매각까지 공무원으로서 경험하기 어려운 여러 중요한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힘겨운 2년여 간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일은 2012년의 방송 디지털 전환입니다. 당시 많은 가정이 디지털 케이블방송을 보고 있었지만, 약 10%의 가정이 안테나를 통해 직접 수신하고 있었고, 시골에서는 아날로그 케이블방송을 보는 가정도 많았기 때문에 일시에 방송을 중단한다는 것이 정부로서도 큰 과제였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디지털 컨버터 보급 사업, 아날로그 케이블 사업자 디지털 방송 지원사업, 디지털TV 보급 사업 등을 통해 2012년 12월 아날로그 방송을 성공적으로 종료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사업을 추진하던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진흥정책관실의 총괄과장이었고 디지털전환 담당과와 함께 해당 사업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Q5. 산업계와의 소통·협력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A. 정책의 성패는 결국 대상자가 원하는 것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맡은 정책이 실제로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책 대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연구반과 간담회를 정례화하며, 대상자들의 의견을 꾸준히 듣고, 필요할 경우 정부의 입장을 설득하며 조정해 가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공직 생활 동안 항상 후배들에게 강조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안을 정책 대상자가 원하지 않으면, 그들과 합의할 수 있는 차선의 방안을 찾아라. 그게 현실의 최선이 될 수 있다.” 정책 대상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방안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정책의 이행 가능성을 높이고, 실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죠.
Q6. 빠르게 변하는 ICT·과학기술 정책 환경에서 서강 동문들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서강 동문의 가장 큰 강점은 성실성입니다. ICT와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저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꾸준히 한 분야를 파고드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강에서 배운 성실성은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예를 들어, ICT·과학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은 이미 많은 연구소나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공공부문에서는 그들이 제대로 연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예전 서강대학교 학보에는 항상 "서강 그대의 자랑이듯 그대 서강의 자랑이어라"라는 문구가 맨 위에 적혀 있었고, 그와 함께 "소시민 양성"이라는 문구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 문구는 다소 소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 서강에서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학교가 지향했던 인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서강은 사회와 기업을 지탱할 성실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습니다. 그 교육 이념은 지금도 여전히 서강대 출신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강대 출신은 어디서나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Q7. ICT가 사회 전반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습니다. 후배들이 이 변화 속에서 찾을 역할은 무엇일까요?
A. ICT와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역할을 억지로 찾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하나의 사회적 흐름일 뿐이며,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어떻게 깊이를 더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미 많은 선배님이 서강인의 특성인 성실성과 학교 다닐 때부터 다져진 학습 능력으로 각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실명을 거론하긴 어렵지만, 외국계 국내 플랫폼 기업의 주요 보직에 근무하고 계신 선배님부터 금융계, 언론계, 산업계, 학계 등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계신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Q8. 앞으로의 ICT·과학기술 정책 방향과 그 과정에서 서강 동문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요?
A. 현재 ICT·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화두는 AI(인공지능)입니다. 새 정부는 인공지능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관련 예산과 정부 조직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서강대는 이미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AI·SW 대학원과 가상 융합전문대학원으로 개편하여 전문 교육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서강 동문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합니다. AI 분야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끌어낼 것입니다. 서강 특유의 성실성과 깊이 있는 학문적 접근은 AI 분야에서도 중요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습니다.
Q9. 다가올 미래, 머지않아 그 선두에 서 있게 될 주니어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A.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3년을 과감히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직업에 대한 관심이 자주 바뀌고, 이직도 많지만, 저는 젊은 시절 무엇이든 3년을 투자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년의 집중이 결국 30년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대학원이든 자격증이든, 공무원 시험이든, 3년 동안 열심히 투자하면 그 경험이 커다란 자산이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3년은 끈기 있게 일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직을 하더라도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제 딸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재의 조언”이라며 웃지만, 그럼에도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0살 가까이를 살아보니, 이 조언이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이태희 동문의 이력은 ‘작동’과 ‘합의’로 완성된 정책사의 기록이다. KT 민영화, 방송 디지털 전환, 그리고 AI 시대로 이어지는 변곡점마다 이 동문은 대상자 중심의 설계, 차선의 지혜, 성실한 집행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과 행동으로 미루어 보건대, 빠른 변화의 시대일수록 원칙은 단순하다.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실성, 그 힘이야말로 서강 동문이 만들어갈 ICT·과학기술의 내일이 이어질, 서강형 지속가능성의 원천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글 | 서강옛집 오연지(23 신방) 기자, 서강옛집 담당 이수민(14 수학)
사진 | 이태희(86 정외) 동문 제공, 김현우(21 물리) 인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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