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장인-귀농 8년차 농부 장영란(77·국문)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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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6-03-27 15:44 조회23,1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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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에서 농사짓는 장영란 동문
귀농, 자연을 닮은 또 다른 삶의 선택
10년 전 서울을 떠나 지금은 전라도 무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네식구와 함께 살고 있는 장영란 동문은 단순한 귀농인이 아니었다. 농사는 먹거리를 해결하는 수단이었지 그것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 눈으로 보면 장 동문의 삶은 ‘특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 동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이야기 들어보면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꼭‘돈'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살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만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 동문의 최고의 가치는‘삶' 그자체이다.‘ 진짜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한다. 장동문은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에서 삶의 최고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해 나간다.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시골로 왔을 때, 자연은 두려움이었다. 더구나장 동문이 선택한‘자연농'은 사람의 인위적인 조작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연의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과연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고, 비닐을 씌워 온도를 맞춰주지 않아도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자연은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먹고 살아갈만한 충분한 양식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지금은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루 세끼 장영란 동문의 가족이 먹는 식탁 위에는 가장 건강하고 풍성한 자연의 만찬이 펼쳐진다. 방금 따온 제철 나물이며 김치, 깍두기, 심지어 반찬에 들어가는 고추장, 된장, 간장과 각종 조미료까지 직접 지은 농산물이다. 고추장을 만드는데 3년이 걸린다는 장 동문의 말은 마트에서 사온 빨간통에 담긴 고추장만 먹어 본 도시 사람에게는 고추장 하나도 신비로운 먹거리로 다시 보게 한다. 요즘은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식초까지 직접 만든다.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은 농사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지었는데 자연은 보너스로 장 동문네 식구들에게‘돈'을 벌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다. 먹고 살기 위해 자연을 처음부터 배워나가다 보니, 어느새 장동문 가족들은 누구보다 풍부한 지식을 갖춘 ‘자연 박사' 가 되었다. 도시 사람들에게 장 동문가족의 삶과 글은 삶을 정화하는 청량제였고, 자연에대한 기록은 가장 충실한 ‘자연 교과서'였다.
장동문이 지난 2004년에 펴낸 <자연달력, 제철밥상> (들녁)은 아무리 많이 배운 학자도, 아무리 경험 많은 농부도 쉽게 쓸 수 없는 살아있는 우리나라의 자연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고 자연 먹거리에 대한 파릇파릇한 지침서이다. 이 책을 보면 장 동문과 가족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자연을 배워나가는 과정, 그 속에서 얻은 자연의 지혜, 서로의 삶을 존중해 주고 보장해 주는 가족간의 관계도 자연을 닮아 있는 장 동문네 식구들의 삶의 모습이 글의 그림자로 비춰진다.
도시에서는 가족 구성원들마다 각자의 삶이 따로 있다. 같이 잠을 자도 아침이 되면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졌다가 때가 돼야 한 집에 모인다. 그렇지만 장동문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24시간 가족이 함께 있다. 같이 자고,같이 먹고, 같이 일한다. 엄마, 아빠, 딸, 아들이렇게 네 식구가 논과 밭에서 먹을 거리를 만들고, 자연과 함께 산다. 장영란 동문 식구들은 도시에서와 같은 각자의 삶이 있지 않고, 공통적으로 자연에서의 삶이 존재하며 가족구성원 개개인의 느낌과 생각에 충실한 개인적인 삶이 존재한다.
자연은 항상 그들에게 호기심을 던져 주고, 그 호기심을 푸는 즐거운 숙제는 그들의 놀이이자 일상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열여덟 딸과 열두살 아들은 자연에서 배운다.딸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 집을 지었고, 아들은 메이플스토리에 나오는 아이템을 나무를 깎고 종이를 접어 만들 줄 아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졌다. 통제하고 지시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의 생각과 느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관계 또한 자연스럽다.
장 동문 부부가 만든 사이트인 www.nat-cal.net에는 부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매일매일의 자연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말 그대로 자연 달력이다. 장 동문의 방에 걸려 있는 칸이 큰 달력에도 손으로 쓴 자연 이야기가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적혀 있는 메모지와 함께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올 4월이면 장 동문 가족들의 삶과 생각이 담긴 책이 또 한 권 나올 예정이다. 장 동문과 가족들이 전하는 잊고 있던 자연과 자연스런 삶에 대한 자연의 선물을 받을 마음의 작업을 해야겠다.
조광현(88·경제) 디지털미디어리서치대표·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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